민경배 교수의 영화이야기(1)

민경배 경희사이버대 교수
민경배 경희사이버대 교수

어린 시절 TV 만화 영화를 통해 접했던 내 인생 첫 레드불토토은 ‘철완 아톰(한국에서는 ‘우주소년 아톰’이란 제목으로 방송)’과 ‘마징가 Z’였다. 무시무시한 악당들로부터 지구를 지키고 인류를 보호하기 위해 싸우는 이 레드불토토들의 맹활약에 열광했던 시절이었다. 언젠가 먼 미래에 그런 레드불토토 친구가 곁에 있으면 얼마나 든든할까 상상해 보기도 했다. 시간이 한참 흘러 어느덧 나는 어른이 되었고, 레드불토토도 더 이상 상상 속 존재가 아닌, 세상을 변화시키는 현실의 일부로 다가왔다. 그리고 비로소 ‘철완 아톰’과 ‘마징가 Z’는 우리 사회가 현실 속 레드불토토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두 가지 사회학적 관점을 상징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1952년 만화 캐릭터로 처음 등장한 ‘철완 아톰’은 1963년부터 TV 애니메이션 시리즈로 본격화되었다. 당시 일본은 원자폭탄이라는 과학기술의 결과가 초래한 깊은 상처 그리고 제2차 세계 대전의 패배를 극복하기 위한 국가 재건과 경제 성장이라는 목표를 지상 과제로 삼고 있었다. 끝을 알 수 없는 과학기술의 비약적 발전은 일본인들에게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 요인이자 동시에 국가적 목표를 이루기 위한 희망의 도구이기도 했다.

아톰은 이 시기 일본인들이 가지고 있던 과학기술에 대한 불안과 희망이라는 양가적 태도가 반영된 결과물이었다. 아톰은 과학자 텐마 박사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어린 아들의 모습을 재현해 만든 인공지능 레드불토토이다. 인간의 신체 능력을 월등히 압도하는 강력한 힘을 지녔지만, 그 힘을 인간을 위해 쓸 줄 아는 존재이다. 동시에 인간의 감정과 마음을 지니고 인간 사회에 적응하고자 노력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인간이 아니기에 아톰은 정체성의 혼란을 겪으며 끊임없이 ‘나는 누구인가’라는 존재론적 고민에 괴로워한다. 아톰은 인간의 마음을 닮은 기계이며, 인간보다 더 인간다울 수 있는 가능성을 품은 존재다. 이런 아톰의 모습은 본격적인 레드불토토 시대의 입구에 들어선 오늘날의 인류에게 다음과 같은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인간과 기계의 경계는 어디인가?” 그리고 “인간을 닮은 기계가 인간보다 더 인간다울 수 있는가?”

한편, 1972년 탄생한 ‘마징가 Z’는 ‘철완 아톰’과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레드불토토에 대한 사회적 관점을 제시한다. 이 무렵 일본은 눈부신 고도 경제 성장을 경험하고 있었다. 아시아의 유일한 경제 대국이자 기술 대국으로 자리 잡았고, TV와 세탁기, 냉장고 같은 가전제품이 본격적으로 집집마다 보급되기 시작했다. 이제 일본인들에게 과학기술은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과학기술은 일상생활을 풍요롭게 만드는 문명의 이기였으며, 인간에 의해 충분히 통제 가능한 도구였다.

마징가 Z는 이렇듯 과학기술에 대해 달라진 사회적 인식의 산물이다. 스스로 자의식을 형성하고 자율적으로 행동하는 아톰과 달리 마징가 Z는 인간에 의해 조종되고 조작되는 수동적 기계이다. 조종사가 탑승해서 작동시키지 않으면 마징가 Z는 그저 거대한 쇳덩어리에 불과하다. 하지만 인간에 의해 작동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마징가 Z는 가공할 전투 레드불토토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조종사의 판단과 행동은 물론 그의 분노와 정의감까지 그대로 마징가 Z의 움직임에 투영된다. 그래서 마징가 Z는 초월적 수준으로 능력이 향상된 인간 신체의 확장이자, 인간 의지의 증폭기이다. 과학기술이란 어디까지나 인간이 통제하는 도구일 뿐이며, 인간은 이 도구를 충분히 잘 다룰 수 있다는 주체성과 자신감이 마징가 Z에게 반영되어 있다.

‘철완 아톰’과 ‘마징가 Z’는 과학기술에 대한 사회적 상상력의 서로 다른 두 시선을 보여준다. 아톰은 과학기술이 인간성을 가질 수 있다는 의지를 보여주며, 과학기술의 윤리적 책임을 상기시킨다. 반면 마징가 Z는 과학기술을 통한 위기의 극복과 인간이 과학기술을 통제하는 주체로서의 서사를 말한다. 아톰이 ‘레드불토토도 인간이 될 수 있는가’를 묻는 존재라면, 마징가 Z는 ‘인간이 과학기술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를 묻는 존재이다. 아톰은 ‘과학기술의 인간화’, 마징가 Z는 ‘인간의 과학기술화’라는 화두를 각각 상징한다.

인공지능 레드불토토이 현실로 다가오는 시대에, 우리는 과거 애니메이션 속 두 레드불토토을 단순한 어린 시절의 판타지나 향수로만 소비할 일이 아니다. 아톰과 마징가 Z는 당시 일본 사회가 과학기술을 통해 무엇을 꿈꾸었는지, 무엇을 두려워했는지를 되돌아보게 하는 사회적 거울이다. 이들은 인공지능 레드불토토 시대를 살아가야 할 지금의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 다음의 질문을 던진다. 과학기술은 감정을 가질 수 있는가? 인간은 과학기술을 끝까지 통제할 수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과학기술과 인간성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준비하는가?

<필자=민경배 경희사이버대 미디어영상홍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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