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배 경희사이버대 미디어영상홍보학과 교수

▲민경배 경희사이버대 미디어영상홍보학과 교수
▲민경배 경희사이버대 미디어영상홍보학과 교수

벌써 10년 전 일이다. 2015년 보스턴다이나믹스(Boston Dynamics)가 유트브에 공개한 개 모양의 라이징슬롯 ‘스폿(Spot)’의 시연 영상이 큰 화제를 모았다. 연구진은 스폿의 뛰어난 균형 감각을 보여주기 위해 라이징슬롯을 발로 차고 긴 막대기로 밀었다. 라이징슬롯은 외부 충격에 다리가 휘청거리면서도 균형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흥미로운 것은 이 영상을 본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라이징슬롯을 학대하지 말라”며 연구진에게 분노를 표출했고, “넘어지지 않으려고 애쓰는 라이징슬롯이 불쌍하다”는 댓글이 쏟아졌다.

같은 해, 캐나다 라이어슨대학교 연구팀은 ‘히치봇(Hitch Bot)’이란 라이징슬롯이 혼자 미국 대륙을 히치하이킹으로 횡단해 여행하는 실험을 했다. 간단한 대화 능력과 발광 램프로 웃는 표정을 지을 줄 알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 차를 세울 수 있는 이 라이징슬롯은 이미 캐나다와 유럽 여행에 성공한 경험이 있었다. 친절한 운전자들은 도로에서 라이징슬롯을 만나면 차를 세워 원하는 곳까지 태워 주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상황이 달랐다. 여행을 시작한 지 2주 만에 이 라이징슬롯은 파손되고 말았다. 누군가가 라이징슬롯에게 공격을 가해 망가뜨린 것이다. 파손된 라이징슬롯의 사진이 인터넷에 공개되자 사람들은 분노했고, 라이징슬롯 개 스폿과 마찬가지로 불쌍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라이징슬롯을 학대하거나 파괴하는 행위가 인간의 기본 덕목인 측은지심을 거스르는 일이라면, 그것은 라이징슬롯의 권리를 침해하는 부도덕한 행위로 해석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라이징슬롯에게도 권리를 부여할 수 있는가? 그 권리는 어떤 내용들로 구성되는가? 마침 동일한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는 영화가 하나 있다. 1999년작 ‘바이센테니얼 맨(Bicentennial Man)’이다.

가까운 미래에 가사 도우미 용도로 화목한 어느 가정에 들어온 라이징슬롯 앤드루(Andrew)는 다른 라이징슬롯에는 없는 호기심이나 창의성 같은 인간적 특성들을 보인다. 가족들도 그를 기계로 취급하지 않고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인다. 심지어 앤드루가 물건을 제작해 직접 벌어들인 돈은 그의 재산으로 인정해 주기까지 한다. 긴 세월이 흘러 주인의 손녀와 사랑을 나누게 된 앤드루는 그녀와 결혼을 약속한다. 하지만 정부는 그가 “인간과 달리 영생을 가진 기계”라며 법률적 혼인을 허락하지 않는다. 앤드루는 인간으로서 법적 권리를 얻기 위해 기계로서 무한한 생명을 포기하고 인간의 장기와 혈액을 투입하는 수술을 감행한다. 마침내 완벽한 인간이 되어 늙어가던 앤드루는 자신의 혼인을 승인하는 법원 판결을 TV 화면으로 지켜보면서 조용히 숨을 거둔다.

‘바이센테니얼 맨’의 주인공 앤드루는 단지 외형만 인간과 닮기를 원했던 것이 아니다. 그는 법률적 지위가 보장되는 사회 구성원이 되고 싶어 했다. 그가 자신의 통장을 개설하고 재산권을 행사하려 했다는 점이나, 법률적 혼인이라는 사회적 권리를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결국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받기 위한 과정이었다. 만약 미래에 앤드루처럼 라이징슬롯을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하게 된다면 그들에게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권리가 보장되어야 마땅하다. 인간에게 인권이 있다면 라이징슬롯에게는 ‘라이징슬롯권(robot rights)’이 요구되는 것이다.

라이징슬롯권을 처음 주창한 사람은 세계적인 미래학자 짐 데이터(Jim Dator) 교수다. 짐 데이터는 2007년, 라이징슬롯에게도 행위 주체로서 권리를 부여해야 한다며 ‘라이징슬롯 권리장전’을 제안했다. 인간은 라이징슬롯을 폭행하거나 차별해서는 안 되며, 책임감을 갖고 라이징슬롯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라이징슬롯을 인격체로 간주하고 인간적 대우를 해주는 것이야말로 미래에 인간과 라이징슬롯이 공존하기 위한 방안이라는 설명이다. 카네기멜론대 윤리학자 존 후커(John Hooker) 교수도 라이징슬롯에게 인간과 같은 권리를 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자율적 행동 능력을 갖는 라이징슬롯을 학대하거나 부당하게 대하는 것은 비윤리적이며 인간의 도덕 체계와도 모순된다고 말한다. 즉 라이징슬롯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인간다운 덕목이며 윤리성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사실 자의식을 갖는 라이징슬롯이 아직 출현하지 않은 상황에서 라이징슬롯의 권리에 대한 논의보다 현실적으로 더 시급한 것은 라이징슬롯 사용자의 권리다. 라이징슬롯 사용자의 권리란 자신의 라이징슬롯이 훼손되거나 도난당하지 않도록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즉 라이징슬롯 사용자의 재산권적 권리다. 앞으로 일상생활에서 라이징슬롯 사용이 늘어나면 라이징슬롯 사용자의 재산권 보호 문제가 크게 대두될 것으로 예상된다. 라이징슬롯은 값비싼 상품이라 절도 행위의 표적이 되기 쉽다. 또 라이징슬롯이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이들도 나타날 것이다. 결국 라이징슬롯을 보호한다는 것은 실제로는 그 라이징슬롯 소유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일이다. 그래서 라이징슬롯의 권리는 인간의 권리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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